만화방의 포스터 그림들이 보이면 옛 추억의 한 장면이 시나브로 지나간다. 그렇다고 어떤 여인과의 첫사랑 그런 것은 아니다. 단지 애틋한 인연이 생각나서이다. 어린 나이에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던 그런 시절이었다. 나에게는 아주 특별하고 아련한 추억이다. 초등학교 어릴 때부터 난 몸의 체질이 어떤 체질이었는지 모르지만 비만 오면 체온이 떨어져 몸에 붉은 두드러기 같은 것들이 났었다. 그러면 집에서는 무슨 약재인지는 지금도 기억이 없지만 아무튼 나에게 약재로 달인 물을 몸에 바르고 몸을 따뜻하게 해줘야 두드러기가 없어지는 그런 희귀병이 있었다. 그래서 여름날 장마철이면 자주 앓곤 한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자주 조퇴를 하곤 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집하고 제법 멀었던 터라 그날도 6월 하순 장마철 비가 오면서 갑자기 주변 온도가 내려가 추위가 엄습하면 아니나 다를까 나의 몸은 어김없이 두드러기 반응을 하여 수업을 파하고 조퇴를 하며 집으로 가야 했다. 가는 도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골목길을 접어드는 모퉁이 하수구 옆 물구덩이 빠져서 인지 나처럼 오들오들 떨고 있는 어린 강아지 한 마리가 길을 잃었는지 낑낑대며 울고 있었다. 난 너무도 불쌍해 하수구에서 건져 내며 두 팔로 감싸 안으며
“얘 너의 주인이 누구니, 왜 이러고 여기에 있어” 라고 강아지에게 말을 건네며 주인이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20분여 기다려도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나또한 부들부들 떨고 있던 처지였다. 기다리는 나의 한계가 다다랐다.. 그래서 다시 강아지를 내려놓고 갈려는 참에 어디서
“얘..너 그 강아지 어디서 봤니” 서넛 살쯤 많아 보이는 누나였다.
“여기 하수구에 빠져 있던데요”
“그래 고맙다. 아무리 찾아도 없던데 그래 고마워 찾아줘서”
“아뇨..그냥 저도 내려놓고 가려고 했어요…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어서”
“그래 고마워. 잘가” 그렇게 헤어지고 나도 집으로 들어가서 치료 아닌 치료를 받으며 쉬며 종일 약재 달인 물을 몸에 바르며 꿀물을 번갈아 먹으며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학교로 가는 길이었다. 이날도 오후엔 비가 예상된다는 예보로 우산을 들고 학교로 갔었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다행이 일기예보가 맞지 않아 비는 오지 않았다. 그런데 골목길을 돌아서는 순간
“얘..너 이 강아지 키울래” 어제 그 누나였다. 너무 뜬금 없었다.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예?...왜요. 무슨일 있어요. 강아지에게”
“아니 그런건 아니야. 얼마 안 있으면 우리 집이 이사를 가거등. 그런데 부모님이 데리고 갈수가 없다고 해서 그래”
“아…네..그럼 저도 부모님께 여쭈어 본 후 말씀 드리면 안되나요.” 그렇게 말하자
“그래..그래라..내일 오후 4시쯤에 여기서 다시 만나자 그럴 수 있지?”
“네..그래요.” 그렇게 말하고 헤어졌다. 집에 도착하여 부모님께 여쭈어 보니 키워도 된다고 하셨다. 다음날 학교를 마치고 그 시간에 맞춰 약속 장소로 갔었다. 그런데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렸다. 그런데도 나타나질 않았다. 난 할 수 없이 집으로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그 다음날도 학교를 파하고 그 시간에 맞춰 갔었다. 그날은 비도 많이 오고 해서 한참을 기다릴 수가 없었다. 10분여 기다려도 오질 않길래 바로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 다음날이었다. 긴가 민가 하고 그 시간에 갔었다. 헌데 그 누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강아지를 안고
“얘. 너 많이 기다렸지. 미안해. 내가 좀 아팠어. 그래서 나올 수가 없었어, 자 받어 강아지”
“네..고마워요. 그런데 이름은 뭐죠”
“아직 새끼라 니가 새로 지어도 되지만 내가 지금까지 그냥 얌순이라고 불렀어”
“그럼 저도 얌순이라고 불러야 겠네요..그래도 괜찮죠”
“그럼 당연하지 오히려 내가 고맙지..하도 얌전해서 얌순이야..그리고 암캐야”
“네..그런데 누나. 누나는 어디로 이사를 가는데요”
“으응. 그렇게 멀지는 않아 버스 다섯 정류장 정도 가면 되는 곳이야”
“네에…그런데 왜 집에서 못키우게 해요”
“내가 아프기도 하고 집이 아파트야. 너도 알지 얼마 전 저 옆동네 새로 지은 아파트” 처음으로 우리동네 근처에 새롭게 지은 아파트가 생겼다. 5층 아파트 였다.
“네에..그럼 아파트엔 강아지를 키울 수가 없나봐요”
“당연하지 마당이 없는데”
“아아 그렇군요…아파트가 좋은 집 인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네요”
“그렇지. 강아지도 키울 수 없고 꽃도 키울 수도 없어 그래서 난 아파트가 싫어”
“그것참 별로군요. 그래요 강아지는 내가 잘 키우고 있을게요.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와요”
“그래 고마워, 참 너 이름이 뭐니 난 세희라고 해”
“난 현수라고 해요 정 현수”
“그래. 현수..잊지 않을게 내가 다음에 얌순이 보러올게..아무튼 잘 키워죠”
“네..누나…그럼 잘 가세요. 잘 키우고 있을게요..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오세요”
“그래 현수야 고마워..나 갈게” 그렇게 해서 우린 그날은 그렇게 헤어졌다. 난 강아지를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어린 강아지라 첫날 밤에 많이 울어 지쳤다. 걱정이 되어 잠을 잘 수도 없었다. 안절부절 하는 나를 보고 아빠가 하시는 말이
“개는 집주인 바뀌면 그렇게 운단다. 현수 니가 엄마처럼 잘 해줘야 돼” 그날 밤엔 나도 얌순이도 잠을 거의 못잤다. 난 얼래고 달래고 했지만 자꾸 얌순이는 낑낑 거리며 울어대고
아침부터 난 엄마에게 엄청 비싼 우우까지 사다가 먹였다. 박스 종이에 집을 만들어 안에 넣어놓고 학교로 갔다. 종일 학교에서도 공부가 되지 않았다. 얌순이 생각에…울지 않고 잘 있는지 밥은 잘 먹고 있는지..학교를 파하자 바로 난 집으로 향해 한달음 쳤다. 도착하니 예쁜 강아지 집이 하나 새로 만들어져 놓여 있었다. 거기에 목줄에 감겨 얌순이는 쪼그려 앉아 있었다. 내가 가서 달려들어 안아 주었지만 영 반기려는 기색도 없다. 얌순이는 그냥 말없이 나만 멀뚱 멀뚱 쳐다보며 울 듯 말 듯 그렇게…
난 정성껏 안으며 또 우유에다 빵까지 먹였다. 날름 날름 잘 받아 먹는다. 우린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듯 친해 졌다. 그렇게 며칠을 얌순이랑 그렇게 보내고 한달 후 였다. 그때 그 누나가 찾아왔다. 우리집으로… 얌순이가 보고 싶어서 왔다고 한다. 얌순이를 보자 “얌순아..”하고 불러 보지만 얌순이는 알아보질 못한다. 많이 섭섭한 모양이다.
“얌순이가 날 못 알아보네…이 언니가 많이 섭섭하네.” 하면서 눈물까지 글썽인다. 그래서
“그러게요 한 달이 지났으니 그럴 만도 하것죠, 너무 섭섭해 하지 마세요. 자주 오시면 되죠”
“그래야 것네. 내가 자주 와야 것네.. 헌데 현수야 나 자주 못와 오늘 온것도 부모님이 모르셔”
“그렇구나. 왜 부모님들은 어딜 못 나가게 하죠. 어른들의 세계는 너무 복잡해요”
“그러게…하지만 내가 자주 못 오지만 가끔식 오면 반겨주라.”
“네..그래요…누나 언제든지 오세요..얌순이 보고 싶을 때” 그날은 누나가 사가지고 온 쏘세지로 나도 먹고 얌순이도 먹고 다같이 먹으며 그렇게 재밌게 놀았다. 그렇게 또 세월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개학을 며칠을 앞두고 누나가 왔다. 핼쓱한 얼굴의 모습이었다. 얌순이가 보고 싶어 왔다는 거다.
“누나 어디 아파요”
“응 그래 나 조금 아파, 하지만 얌순이도 보고 너도 보고싶어 왔어”
“네 그래요” 그러면서 누나에게 얌순이를 건네준다. 이제는 어는 정도 얌전히 잘 따른다. 그렇게 얌순이랑 놀다가 누나가 문득 이렇게 묻는다.
“현수야 내가 어디 가고 싶은데가 있는데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야 같이 가 줬으면 하는데”
“어딜요”
“응 나 만화방에 가고 싶어. 꼭 가보고 싶었는데 한번도 못 가봤어”
“그래요. 그럼 같이가요. 그게 뭐라고”
“그래 고마워” 그렇게 얌순이도 데리고 누나랑 같이 만화방에 갔다. 만화방에서 우린 과자도 사먹고 하면서 말이다. 한번도 가보지 않았다고 해서 난 우쭐대며 이 만화가 가장 인기가 있다는둥 제법 젠체도 하면서 누나에게 많은 얘기도 하고 웃어가며 보냈다. 시간도 벌써 두어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그래서 난 누나 이제 가야 되는거 아닌가 하고 물었지만 누난 조금만 더 보자고 하며 딱 10분만 더 보자고 했지만 1시간을 더 보게 되었다. 왜 그렇게 누나가 만화를 보자고 했는지 난 실은 그때는 잘 몰랐다. 누나는 그때 만화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세상을 꿈꾸었는지 몰랐다. 마냥 행복해 하는 모습만 떠올려 졌다.
“누나 이제 가야 되요..저도 아버지께 혼나는 시간이에요.” 라고 말을 하자 그때서야 일어선다.
“그래 현수야 이제 나도 가야돼..너무 너무 즐거웠어 그리고 얌순이 잘 키우고” 그렇게 말을 하고 헤어지려는 순간 난 누나에게
“누나 자주 와요 얌순이 보러”
“그러고 싶어. 그런데 아마 다음에 올땐 많이 늦을거야 석달 이상 걸릴지도 몰라”
“왜요…무슨일 있나요”
“응. 내가 병을 좀 고쳐야 해. 그래서 언제 올지 몰라. 아주 멀리 가서 치료를 받아야 돼”
“그렇군요..누나 치료 잘 하고 빨리 와야 되요”
“알았어. 그 동안 얌순이나 잘 키워..그리고 현수야 오늘 너무 즐거웠어. 잊지 않을께”
“아니 뭘 그런걸 가지고, 담에도 만화방에 가요”
“그래 고마워 담에도 같이 가자” 그렇게 우리 둘은 헤어졌다.
세월은 어느덧 한 학기가 지나갔다. 그런데도 누나는 오지 않았다.
방학이 끝나가도 오질 않았고 한 학년이 올라 5학년이 되어도 오지 않았다. 이제 얌순이가 보고
싶지가 않은가 보다. 하면서 난 그 누나를 많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정 현수. 종례 끝나고 교무실에 올 것” 하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지 조금의 겁을 먹은 체 현수는 교무실로 갔다.
“정 현수. 나 세희 라는 친구를 아나”
“네? .나 세희요..아아 세희 누나요”
“으음.. 나 세희. 그래 아는 사람이냐”
“네..아는 누나입니다. 그런데 왜요”
“음..그래..그 아이 엄마가 와서 너에게 전해 달라고 하며 편지를 주고 갔다. 무슨 일이냐”
“글쎄요 저도 모르는 일인데요.”
“그래…알것다. 자 여기 편지받어”
“네 고맙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하고 난 편지를 받고 교무실로 나와 곧바로 책가방을 챙기며 집으로 달려가 책상 앞에 앉아 조심스럽게 펼쳐 읽어 보았다.
“현수야 잘 있었어. 세희 누나야. 난 태어날 때부터 심장에 병이 있어 지금까지 고치지 못해 미국이라는 나라까지 와서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엔 고치지 못 할거란 의사와 엄마랑 하는 얘길 들었어. 그래서 너에게 이렇게 편지를 쓰는거야. 니가 기다릴 까봐. 난 친구들이랑 뛰어 놀지도 못했어 체육시간이 되면 늘 느티나무 그늘에 쉬면서 친구들의 뛰노는 모습을 보면서 난 왜 이렇게 태어났지 원망을 많이 하면서 자라게 되었지. 그런데 너를 만나 만화방에도 가고 얌순이랑 놀던 그때가 내가 살면서 가장 많이 웃었던 같아. 그날 만화를 보면서 요술 공주처럼 맘대로 뛰어다니는 세상이 나에게도 왔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단다. 너랑 얌순이랑 같이 뛰어노는 그런 생각만으로도 너무 행복했었어. 잊을 수가 없어. 아무튼 이 편지를 받을 쯤이면 아마 난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몰라.
현수야! 니가 많이 보고 싶어 얌순이도. 이제 넌 5학년 이것지. 넌 아프지마..그리고 나 조금이라도 생각을 해줬으면 해. 아무도 날 생각 해주지 않으면 하늘나라에서도 너무 외롭고 슬프것 같아. 그럼 잘 있어.
세희 누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