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망이 깍는 노인
동티모르 독립기념일 휴일이라 밖을 나와서 처음엔 달리기 15킬로 미터를 도전하려고 뛰어 나왔다가 햇볕이 따갑기도 하고, 뛰기 싫기도 하여 그냥 돌아왔다. 마냥 걸어 가보자 하는 심정으로 대충 물만 챙기고 나왔다. 평소 가보지 못한 길로 도전하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들의 삶을 보러 간다기 보다는 운동하는 마음으로…
마을 사람들을 만나더라도 그들에게 말을 건네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고 갔다. 왜냐면 괜한 오해를 만들지 않으려는, 낯선 곳의 필수 사항임을 상기하면서.. 하지만 나의 생각과는 달리 이 나라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방인이라는 어색함의 표정이 없다. 해맑다. 아침이라 모두 “본디야” 라는 이 나라 아침 인사말로 반갑게 맞이한다. 나도 물론 “본디야” 라고 답을 해 준다. 나의 선입견을 바로 망가뜨리는 순간이다. (본디야 : 동티모르 아침 인사)
가다 보니 조그마한 마을 시장이 나왔다. 쭉 둘러보고 살만한 게 있나 궁금증이 있어 둘러 보았지만, 과일도 딱히 살만한 품질이나 맛이 그다지 없어 음료수만 사다 목만 축였다. 마을 시장이 우리의 80년대 풍경이다. 나무판자 위에다 음식을 내놓고 사람을 기다린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흥정도 하지 않는다. 참으로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살테면 사고 아니면 말라는 식인지 이방인이라 그냥 멀뚱 멀뚱 쳐다만 보는데…
휴일이라 그런지 너무도 평온한 시장의 풍경이다. 시끄럽지가 않다. 원래 시장이라는 게 북적거리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다. 그런데 시장 한 모퉁이에서 뭔가를 다듬고 깎고 하는 할아버지가 한 분 계셨다. 뭘 그렇게 깎고 다듬나 하고 자세히 들여다 보니 절구통에 음식을 찍는 방망이 같아 보였다. 우리네 것보다도 작아 보였다. 절구통도 그렇고 방망이도 그렇다. 무엇을 깎느냐고 물어 보았지만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분이었다. 답답함을 뒤로하고 난 대충 알겠다는 표정만 짓고 돌아섰다.
이리 저리 시장을 다 둘러보고 나와서는 다른 방향으로 계속 또 걸었다. 걷다가 생각이 났는데 옛날 중학교 국어책에서 ‘방망이 깎던 노인’ 이라는 윤 오영의 수필이 생각났다. 지은이는 기차시간을 때울 겸 아내의 부탁도 있어 다듬이 깎는 노인을 발견하고는 그것을 사려고 흥정을 한 다음 옆에서 기다렸는데, 나름 자기가 보기엔 다 깎은 다듬이 방망이를 한참을 깎고 깎고 해서 애를 태우며, 그냥 달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기다리라고 하여 망연자실 차 시간마저 놓치게 되어 기분을 잡치며 집에 내려 왔지만, 방망이를 아내에게 보여 주자 최고의 방망이라는 칭찬을 듣고서야 후회를 하며 그 노인을 그리워 하던 수필이었다.
뭐라도 정성을 다해서 파는 장인 정신에 관한 글이었다. 그 할아버지도 그런 정신이었을까 하고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우리들의 삶은 이제 정보화시대에 맞는 뭐든지 빨리 하는 세대가 되어 버렸다. 거기에 나는 허걱대는 세대로, 쫓아가기 바쁜 꼰대가 되어 버렸고, 세월의 흐름이야 어쩔 수 없는 삶으로 살아간다고 하지만, 지천명의 나이가 되어도 왜 이리도 허겁지겁 살아왔나 싶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내 가족들을 위해서 라는 희생 정신을 강요 받으며 살았다 라고 핑계를 대기엔 너무도 초라해 보인다.
옛 선인들이 정성을 다해 서두르는 법 없이 하는 장인 정신으로 방망이를 깎는 노인처럼 내 삶 또한 서두름 없이 잘 되어 가고 있나 하며 되돌아보며 명상의 시간이나마 가져 본다는 것으로 만족을 해야되나…..
바닷가에서 아기와 엄마와 깔깔 거리며 파도와 노는 모녀의 풍경이 오늘따라 나를 더욱 더 씁쓸한 미소를 짓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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