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인생은 아다지오 처럼

나의 오우아 2022. 7. 14.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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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동티모르에 온지 거의 1년이 되어 간다. 20212 24일이면….시간이 참으로 빠르다고 하면 빠르고 느리고 지겹다라고 하면 느린 시간이었다. 해외에 많은 일로 나갔지만 이렇게 1년 동안을 휴가로 한국을 가보지 못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코로나 라는 대유행 바이러스 사태로 인한 일이기에 어쩔 수 없이 가지 못하긴 하지만.

 

대신 세월에 대해 가만히 지켜 보고 감상해 보는 시간이 늘었다. 조급해 해서 때론 지겹기도 하였고 일 때문에 시간이 후딱 지나가기도 하였다. 전번 현장 특히 중동에 있었으면 조급함에 일도 손에 안 잡히고 맨날 술만 마셨을 거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여기 동남 아시아의 조그마한 나라에 와서 그리고 팬데믹 때문에 아예 포기를 하고 있으니, 사는 세월을 되돌아보게 하고 모든 삶의 일부를 조금씩 감상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래서 글도 자주 쓰게 되었다. 시도 그렇고..

 

느닷없는 사태에 조급함이 생기게 마련이겠지만 내가 전에 늘 그러했듯이…. 하지만 난 이번에 염소가 새끼 낳는 장면을 보게 되었고 얼마 안 있으면 개도 새끼를 낳을 것이다. 닭도 곧 알을 낳을 것이다. 그들에게 정성을 들이고 하는 시간이 재밌다.

 

비가 오면 들판에 풀어놓은 염소들을 다시 우리에 몰아다 넣어 줘야 하고 닭은 새벽에 모이를 주고 다 먹고 나면 닭장 문을 열어 풀어 놓아준 후에 밤이면 횃대에 두 마리가 앉아 있는걸 보아야 하루가 마감되는 그런 부산스러움이 나를 뭔가로부터 훼방이 아닌 해방의 맛을 준다고나 할까 그렇다.

 

그리고 가끔 바닷가로 나가 잠수를 하며 새끼 열대어를 구경하고 일요일이면 자전거를 타고 이리 저리 돌아다니며 이 낯선 땅의 내음을 맡는다. 이네들은 내가 보기엔 많이 부족한 60,70년대의 삶을 살아가지만 학원의 삶에 찌들지 않고 늘 웃는 아이들의 낯은 나를 옛 초동의 시절을 꿈꾸게 해주고 낯선 이방인마저 반갑게 쳐다보니 말이다.

 

아무튼 일상의 소소함이 나를 1년 동안 버티게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비가 오면 울창한 숲 속의 연주가 아다지오의 속도에 맞춰 들리는 이 느림의 음악이 아름다워 지기까지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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